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유연성은 다양한 요구사항을 수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구조적 특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는 다른 어떤 컴퓨팅 요소보다도 유연하다. 그리고 잘 만들어진 소프트웨어일 수록 더 유연하게 요구사항을 수용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의 적용 분야가 확대되고,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들 간에 경쟁이 치열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게 되고, 더 많은 기기들이 연결되고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게 되면서 유연성에 대한 요구는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사항을 반영하기 위해서 소프트웨어는 유연성을 다른 어느 요소보다도 높은 가치로 가지고 갈 수 밖에 없다. 이것이 현대에 객체지향 언어가 대두된 이유이다.

그렇다면 객체지향 언어는 어떤 방식으로 더욱 유연한 구조를 가질 수 있게 되었을까? 여기에 대한 답 역시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린 왕자의 유연성 : 양이 든 상자

소프트웨어의 유연성을 떠올리면 항상 어린 왕자의 일화가 떠오른다. 어린 왕자는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화자)에게 양을 그려줄 것을 부탁한다. 조종사는 양을 그려본 적이 없기 때문에 거친 솜씨로 이런 저런 양을 그려 준다. 하지만 어린 왕자는 어떤 것은 병들어 보인다, 어떤 것은 숫양이다, 어떤 것은 너무 늙어 보인다는 이유로 퇴짜를 놓는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양을 다시 그려달라고 말한다.(이쯤에서는 까다로운 요구사항을 늘어놓는 고객이 떠오르게 된다.) 그러자 조종사는 아무렇게나 쓱쓱 그린 상자를 주면서 네가 갖고 싶어하는 양은 그 안에 들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자 어린 왕자의 얼굴은 환하게 밝아진다. 어린 왕자가 어떤 양을 상상하든 그 양은 그 상자 안에 들어 있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상자에 만족하게 된다.

우리가 현실세계에서 말하는 유연성이란 이런 상자와도 같다. 구체적인 사항들을 세세하게 늘어 놓으면 정확하긴 해도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는 힘들다. 좀 엉성하고 덜 구체적인 것은 이리저리 가져다 붙이면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 어린 왕자의 상자는 그런 엉성하고 덜 구체적인 것의 결정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해서 상자는 양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매우 추상적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린 왕자는 그 상자에서 자신이 원하는 양의 모습을 마음껏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수잔 서덜랜드는 그의 저서 "밈"에서 다음과 같은 타로 카드 점괘를 이야기 한다.

"당신은 남들의 애정과 인정을 받아야만 하는 타입이면서도 스스로에 대해서는 엄격하네요. 겉으로는 절도 있고 자신을 잘 통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많고 불안감도 많이 느끼고요. 가끔은 내가 제대로 된 결정을 내렸을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하는군요......"

이 점괘는 사실 트릭인데 이는 "바넘 효과"라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바넘 효과는 거의 누구나 스스로에 대해서는 참이라고 생각하지만 남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진술을 던지는 것이다. 이것은 심리적인 유연성에 해당한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맞다고 생각하는 점괘를 말해 줌으로써 그 점괘를 믿도록 만든다. 이러한 점괘에서는 당연히 매우 구체적인 날짜나 시간, 구체적인 명칭이나 사건들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야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어 맞는 유연한 점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유연성 : 추천 편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전 1세기에 살았던 로마의 지도자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인물 사전에 보면 로마의 정치가, 장군, 작가라고 나온다. 대단히 다재다능한 사람으로써 생애 전체가 유연성의 표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가 지휘해서 이긴 전투들은 대부분 너무 독창적이어서 안타깝게도 사관학교 교재로 쓰이지 못할 정도이고(사관학교에서 교육을 하려면 어느 정도 정형화되고 누가 하더라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전투 방식이어야 하는데 카이사르의 그것은 너무나도 창의적이었다는 의미이다.), 이런 능력은 여자를 홀리는데도 사용되어 유명한 난봉꾼으로 통하기도 했다.

어쨌든 카이사르의 이러한 재능의 원천은 철저히 합리적인 방식을 통해서 얻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발명에도 일가견이 있었는데, 긴 두루마리에 글을 적고 읽었던 당시에 종이를 낱장으로 잘라 한쪽 면을 이어 붙이는 "책"을 발명하였다. 이것은 두루마리가 이전에 글을 읽었던 위치를 알기에는 적합하지만 원하는 글이 적힌 임의의 위치를 빠르게 찾는데는 불편하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또한 당시까지 사용되던 부정확한 로마력을 대신하여 율리우스력이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정확한 달력을 사용하도록 했다. 이 달력은 기원전 1세기에 사용되기 시작한 이후로 1582년 그레고리력으로 바뀌기 전까지 사용될 정도로 매우 정확했다.

이런 합리적인 사고 방식은 그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방의 선거에 자신이 원하는 인물들을 추천한 방식에도 나타난다. 카이사르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쓰인 편지들을 미리 만들어 두었다.

"카이사르는 선거구 (       )의 유권자 여러분이 던지는 표로써 후보자 (     )가 그들이 바라는 관직에 당선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필요한 시기에 이 편지에다 선거구 이름과 후보자 이름만 적어 넣음으로써 필요한 모든 선거구에서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지지해 주도록 추천할 수 있었다. 카이사르의 합리적인 성격 덕분에 매우 유연성 있는 추천 편지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유연성의 예는 현대에도 자주 찾아 볼 수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이미 결혼을 한 사람이 있다면 결혼을 위해서 청첩장을 만들어 전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청첩장의 내용은 그 청첩장을 받는 사람들마다 모두 달랐을 것이다...... 라고 짐작한다면 아무래도 유연성이 떨어진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청첩장의 내용물은 모두 같고, 단지 전달할 상대에 따라서 겉포장에 이름만 다르게 적어 보냈을 것이다. 이것이 인간미는 조금 떨어질지 모르지만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상당히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왕자의 상자, 유연한 점괘, 카이사르의 추천 편지, 청첩장의 예를 통해서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유연성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일단 여러 요구사항들(어린왕자가 원하는 그 양, 점을 보러 오는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선거구에 다양한 후보)을 모두 만족시키려면 모든 요구사항이 포함하는 공통된 부분들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서로 다른 점들을 제거하고 공통된 부분을 모아 필요한 대상을 미리 만들어 둔다. 그리고 나서 개별적인 요구사항들에 대해서는 차이점만 조금씩 더해서 대응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 요구사항을 개별적으로 대응하는데 들어가는 수고를 최대한 덜어낼 수 있다. 요컨데 똑같이 할 수 있는 부분을 뽑아 내어 한번만 하고 다른 부분들에 대해서는 최소한으로 대응하는 방식이다.


유연성 확보 전략 : 오케스트라의 비유

이제 조금 더 객체지향에 가까운 유연성 비유를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다. 이번에는 오케스트라에 비유해 보도록 하겠다. 오케스트라는 매우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과 지휘자가 함께 음악을 연주한다. 악기는 바이올린, 피아노, 플루트, 하프, 비올라, 바순, 트럼펫, 트럼본, 첼로, 콘트라베 등 매우 다양하다.


이제 우리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행동을 유추해 보자. 일반적으로 지휘자는 특별히 말을 하지 않고 지휘봉을 이용하겠지만 목적한 바를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지휘자가 말로 지휘를 한다고 생각해 보겠다. 지휘자는 이제 연주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 각각의 연주자들에게 연주를 부탁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지휘자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바이올린 연주하세요. 피아노 연주하세요. 플루트 연주하세요. 하프 연주하세요......"

이렇게 각각의 연주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연주를 부탁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일단 연주를 시작하는 시점이 다르기 때문에 아름다운 연주가 되지도 않을 뿐더러 연주를 다 시작하게 될 때까지 시간이 매우 많이 걸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면 이제 다음의 방법을 생각해 보자.


이런 난감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지휘자는 기지를 발휘한다. 지휘자는 각각의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다룰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연주자, 피아노를 연주하는 연주자, 플루트를 연주하는 연주자...... 이들은 모두 다른 악기를 연주하지만 연주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각각의 악기 이름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공통된 부분, 즉 연주자라는 호칭으로 연주를 부탁하면 된다.

"연주자 여러분, 연주하세요."

이렇게 되면 각 연주자들은 동시에 연주를 시작할 수 있고, 지휘자는 단 한번만 요청하면 모든 악기가 연주 되도록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지휘자는 매우 구체적인 대상, 즉 바이올린 연주자, 피아노 연주자 등을 대신하여 조금은 추상적인 대상, 즉 연주자라는 개념을 만들고 활용하였다. 이는 앞서 살펴본 현실 세계의 예들을 대표하는 방식이다. 실제적이면서 개별적인 대상 대신에 공통적이고 조금은 추상적인 개념을 대상화하고 이를 이용함으로써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에 비해 훨씬 합리적이고 손쉽게 요청을 전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제 현실 세계에서 서로 다른 다양한 요구사항들을 어떤 방식으로 합리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여러가지 요구사항들을 수집(각 악기 연주자들)하고, 구체적인 요구사항에 비해 다소 추상적인 공통점(연주자)을 찾아내고, 이를 대상화(연주자라고 부를 수 있도록)하고, 이들 공통점에 차이점을 조금 더하고(어떤 연주자는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공통점을 중심으로 대상을 다룬다(연주자 여러분 연주하세요). 이런 방식으로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은 조금만 관심있게 찾아보면 늘상 있는 있는 일이라는 점도 알 수 있다. 동사무소에 준비된 각종 서류들은 이름과 서명란, 주소 등의 몇가지 구체적인 정보만 놔 둔체 이미 작성되어 있다. 여기에 자기의 정보만 적어 넣으면 곧바로 훌륭한 신청서가 된다. 보험을 가입할 때에도 약관은 이미 작성되어 있고, 가입자가 개인 정보를 기록하고 사인만 하면 가입이 완료된다. 이런 예를 더 찾아보자면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유연성을 확보하는 과정을 단계별로 살펴볼 시간이다.


공통점을 추출한다.( = 차이점을 감춘다.)

현실 세계에는 마치 아날로그와도 같은 수준의 서로 다른 요구사항들이 있다. 아날로그 수준이라는 말은 요구사항이 하나하나 떨어져 있지 않고 서로 연속적으로 이어진 것처럼 다양하다는 의미이다. 연속적으로 이어진 요구사항들은 그 사이사이에 또 무수히 많고 다양한 요구사항들을 품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이미 밝혀진 요구사항들보다도 더 많은 요구사항이 앞으로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한가지를 보면 다른 한 가지를 떠올린다. 요구사항 하나는 그와 유사한 생각을 만들어 내고 이것은 다시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유독 웹 개발자들이 힘들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시스템 내부가 어떻게 동작하는지는 쉽게 알 수 없지만 브라우저 상에서 표현되는 그림이나 글자는 쉽게 눈에 보이고, 눈에 보이는 순간 생각을 하게 되고, 생각이 다시 요구사항으로 돌아 오면서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을 고치게 하기 때문이다.

공통점을 추출하는 과정은 이 아날로그 수준의 서로 다른 요구사항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공통된 특징을 모으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당연히 서로 다른 부분은 제거한다. 오케스트라의 비유에서 각 악기 연주자들은 서로 다른 악기를 가지고 있다. 서로 다른 악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포함하고 있으면 모든 연주자들을 지칭할 수 있는 공통점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따라서 개별적인 악기들은 공통점에서 제거한다.

이와 함께 제거 되어야 하는 것은 또 있다. 각 악기 연주자들은 서로 다른 개인이기도 하다. 거주하는 곳이 다르고, 식성이 다르고, 평소 즐겨 입는 옷도 다르다. 이름, 전화번호, 주민번호, 나이, 헤어스타일 등 다른 점을 찾아보자면 무수하게 많다. 또 공통점도 있을 수 있다. 모두다 한국 사람일 수도 있고, 모두 다 악보를 볼 두 눈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나열하다 보면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수하게 많아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공통점만 모으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공통점이 모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통점을 추출하는 과정에서는 목적에 맞지 않는 불필요한 공통점은 제거되어야 한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현실 세계에서 연주자들과 친하게 지내기 위해서 이런 저런 정보들을 알아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지휘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따라서 지휘하는데 꼭 필요한 공통점만을 추출해 내면 된다. 국적이나 악보를 볼 수 있는 눈 따위는 이 기준에 의해서 제거 되어야 한다.

이처럼 차이점들을 제거하고, 공통된 부분들 중에서 우리의 목적과 상관이 없는 정보들 역시 제거되고 나면 이제 공통점만 모은 어떤 것이 된다.


"대상화" 한다.

어떤 공통점이 모였을까? 우리는 연주를 할 것이기 때문에 각 악기 연주자들은 연주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한 시점에 연주를 멈춰 줄 줄도 알아야 한다. 더 많은 공통점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이 정도만 모였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이제 "대상화"를 할 시간이다. 대상화란 모아 놓은 공통점을 다룰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이다.


(이상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


이 대상화를 떠올리면 항상 이상화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이 시의 아름다움도 좋지만 대상화라는 과정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한 개념을 모았다고 하자. 하지만 이것에 정확한 명칭을 부여하여 다룰 수 있도록 만들기 전에는 그것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공통점들을 명료하게 만들고 명칭을 부여하면 그것은 "꽃"이 된다. 오케스트라의 비유에서 "꽃"은 바로 "연주자"라는 개념이다. 이 연주자라는 개념은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대상을 현실 세계에서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반대로 연주자라는 개념을 다룰 수는 있다. 연주자는 연주를 할 수 있어야 해, 연주자는 필요할 때 연주를 멈출 수 있어야 해 와 같은 방식으로 다소 추상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다룰 수 있는 대상이다. "대상화"의 개념을 명쾌하게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일단 "명칭"을 부여했다는 정도만이라도 이해하면 되겠다.


차이점을 더한다.

이제 남은 것은 차이점이다. 차이점은 공통점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남은 것들이다. 그렇다고 남은 모든 것들은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이다. 차이점을 더하는 과정도 목적에 맞는 것에만 해당한다. 여기서 각 악기 연주자들의 개인정보나 취향은 제거된다. 대신 오케스트라의 목적에 맞게 악기는 다들 가지고 있어야 하겠다. 오케스트라 지휘에 앞서 필요한 악기들이 모두 준비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도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차이점에는 악기가 포함된다. 이제 우리는 연주자라는 개념에 개별적인 차이점이 더해진 개별적인 악기 연주자를 설정한다. 대략 플루트 연주자, 하프 연주자, 피아노 연주자 등이 되겠다.

이 차이점을 더하여 개별적인 악기 연주자를 만드는 과정은 한가지 암시적인 가정을 포함한다. 플루트 연주자는 매우 구체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좀 더 추상적인 개념인 연주자와 동일시 될 수도 있다. 즉 플루트 연주자는 다른 연주자들과 구분되는 플루트라는 악기 속성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연주자가 가진 연주하는 속성, 연주를 멈추는 속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만 다음 단계가 가능해진다.

현실에서라면 이와 같은 과정을 겪어야 할 것이다. 아래는 지휘자가 플루트 연주자에게 하는 가상의 대화이다.

"플루트 연주자님, 플루트 연주자님은 다른 악기 연주자들과 다르게 플루트를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연주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플루트 연주자님을 그냥 연주자라고 부를 것입니다. 연주자란 연주하세요 하면 자기가 가진 악기를 연주하고, 멈추세요 하면 연주를 멈추는 사람입니다. 이해되셨죠?"

현실 세계에서는 이미 각 악기 연주자가 연주자 개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진 않는다.


공통점을 통해 대상을 다룬다.

이제 지휘자가 오케스트라 지휘를 시작할 시점이다. 앞서의 지휘자와 플루트 연주자와의 대화와 유사한 대화들이 각 악기 연주자들과도 오고 갔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이제 지휘자는 연주를 시작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각 악기 연주자들은 우리가 정의한 "연주자"의 개념을 알고 있다. 따라서 각 악기 연주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연주를 부탁하지 않아도 된다. 단지 다음과 같이 말하기만 하면 된다.

"연주자 여러분, 연주하세요"

그러면 플루트 연주자는 자기가 가진 악기인 플루트를, 하프 연주자는 하프를, 피아노 연주자는 피아노를 연주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공통점을 대상화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고서도 각각의 악기 연주자에게 일일이 연주를 지시하는 것은 비 합리적인 일이다.


자 이제 현실세계에서의 유연성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이것이 수많은 요구사항들을 어떻게 수용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으며, 유연성을 확보하는 전략을 단계별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현실 세계에서의 유연성 확보 방법이 우리가 알고자 하는 객체지향 언어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살펴볼 차례다.

Posted by 이세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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